📅 이 리포트는 2026-10-30 작성 · 내용은 대담 당시 발언 기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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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I knowledge · 대담 번역 리포트2026.10.30
SBVA 초청 대담 · 서울57:46

유튜브는 닷새 동안 데이트 사이트였다

스티브 첸 — 유튜브 공동창업자·초대 CTO. 피벗과 대역폭, 소송, 그리고 구글에 회사를 판 진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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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46

원본 57분 46초를 19개 구간으로 나눠 주제별 9개 장으로 다시 엮었다. 구간에 올리거나 누르면 어느 장에서 다루는지 보인다.

1999년, 스무 살 공대생이 ‘다음 주까지 답을 달라’는 말 한마디에 샌프란시스코행 편도 비행기표를 끊었다. 페이팔을 거쳐 유튜브를 만들고, 창업 2년이 안 돼 구글에 회사를 판 스티브 첸이다. 서울 SBVA 무대에 선 그가 꺼낸 건 성공담보다 진땀 뺀 이야기 쪽이었다. 닷새 만에 접은 첫 아이디어, 회사를 삼킬 뻔한 대역폭 청구서, 그리고 구글에 회사를 판 진짜 이유.

30초 요약
  1. 주장유튜브는 설계가 아니라 시장의 대답으로 만들어졌다. 영상 데이트 사이트(닷새) → 영상 블로그 → 마이스페이스·페이스북에 박아 넣는 영상으로, 길은 시장이 정했다.
  2. 검증성장의 비용은 대역폭이었고(넷플릭스와 합쳐 인터넷 트래픽 약 40%), 성장의 벽은 저작권이었다. 첸은 구글 매각을 밀어붙인 진짜 동기로 ‘법률’을 꼽았다.
  3. 액션AI 스타트업을 볼 땐 세 가지를 같이 본다 — 토큰 원가(그때의 대역폭), 저작권 리스크(그때의 비아컴 소송), 갈아타기 어렵게 만드는 충성도.

편도 티켓, 닷새의 말미

부모님은 아직도 그 결정에 동의하지 않는다.

인터넷을 처음 만난 건 열다섯 살, 기숙학교에서였다. 대만에서 태어나 여덟 살에 미국으로 건너간 첸은 1992~93년 무렵 시카고 근교의 기숙학교에 들어갔는데, 그곳엔 100메가비트 이더넷이 깔려 있었다. 잔소리할 엄마도 없겠다, 그는 매일 새벽 4시까지 인터넷을 헤집고 다녔다. 프로토콜도 소스코드도 활짝 열려 있던 시절이다. 기술에 대한 집착은 거기서 시작됐다.

장면은 1999년으로 넘어간다. 일리노이대 어바나-섐페인(UIUC)을 나서던 스무 살의 첸은 페이팔의 맥스 레브친과 면접을 봤다. 같은 학교 출신 마크 앤드리슨이 먼저 서부로 가서 넷스케이프를 세웠고, 레브친도 1998년에 페이팔을 차린 참이었다. 실리콘밸리 창업자들이 엔지니어를 데려가려고 캠퍼스까지 손을 뻗던 때다. 면접 끝에 레브친이 조건을 걸었다.

첸의 회상으로 재구성

레브친“자리는 열려 있어요. 대신 다음 주까지 정해야 합니다. 닷새 안에 실리콘밸리로 올 수 있겠어요?”

첸(지금까지도) “부모님은 그 결정에 동의 안 하세요. 그래도 계산된 결정이었어요.”

계산은 이랬다. 스무 살이면 학교로 돌아가든 다른 회사에 들어가든 기회는 언제든 다시 온다. 하지만 페이팔 자리는 다음 주가 지나면 없을 수도 있었다. 인터넷은 막 시작되던 참이었고, 거품이 꺼지기 전이라 그는 이게 계속 오르기만 할 줄 알았다고 웃었다. 대만으로 이사할 때도, 유튜브를 시작할 때도, 잘 안 풀린 회사들을 시작할 때도 같은 저울질이었다고 했다.

그림 1-1
그가 잰 건 위험의 크기가 아니었다

1999년 첸의 ‘계산된 결정’. 어느 쪽이 다시 오지 않는가를 쟀다.

되돌릴 수 있는 것

복학, 다른 회사 취직. 스무 살에겐 언제든 다시 열리는 문이다.

다음 주면 사라지는 것

페이팔의 엔지니어 자리. “지금, 아니면 다음 주까지 안 잡으면 없을 수도 있었어요.”

샌프란시스코행 편도 티켓 한 장으로 시작한 페이팔 생활은 5~6년 이어졌다. 일론 머스크, 피터 틸, 데이비드 색스가 한 지붕 아래 있던 회사다. 닷컴 붕괴와 상장, 이베이 인수를 거친 뒤 이들은 뿔뿔이 흩어져 링크드인(리드 호프먼), 팔란티어, 테슬라·스페이스X 같은 회사로 갔다. 첸도 2004년 말 페이팔 동료 둘과 함께 나와 이듬해 유튜브를 세웠다. 그의 표현으로 ‘14개월쯤 뒤’ 구글에 회사를 팔았고, 2010년까지 남았다. 그 뒤로는 야후에서 딜리셔스(Delicious)를 사들여 인큐베이터처럼 굴렸고, 구글 벤처스(GV) 출범에도 손을 보탰다고 했다.

다음 큰 이동은 2019년, 코로나 직전이었다. 두 아이에게 아시아에서 살아 보는 경험을 주려고 대만으로 갔다. 길어야 1~2년짜리 짧은 여행이 될 예정이었다. “유튜브도, 페이팔도 다 그랬듯이” 7년이 지난 지금도 그는 아시아에 산다. 아이들은 미국 기숙학교로 돌아갔는데도.

그림 1-2
스티브 첸 연보 — 그의 말로 짚은 순서
  1. 1992~93열다섯 살, 기숙학교에서 100Mbps 인터넷을 만나다“매일 새벽 4시까지.”
  2. 1999스무 살, UIUC를 떠나 페이팔 합류“닷새 안에 실리콘밸리로 올 수 있어요?”
  3. 2004 말페이팔 동료 둘과 함께 퇴사
  4. 2005유튜브 창업4월 말 문을 연 첫 모습은 영상 데이트 사이트
  5. 2006구글에 매각첸의 표현으로 ‘약 14개월 뒤’ — 기록과의 차이는 옮긴이 메모
  6. 2010유튜브를 떠나다이후 딜리셔스 인수·인큐베이터, GV 출범 참여
  7. 2019대만으로 이주계획은 1년, 길어야 2년
  8. 20267년째 아시아 — 실리콘밸리와 대만을 잇는 ‘실리콘 코리도어’
그림 1-3
계획 1~2년, 실제 7년째

대만 체류 기간. 빗금은 계획, 붉은 막대는 실제(진행 중).

운도 따랐다고 했다. 대만에 있는 동안 반도체가, TSMC가, 신주 일대 회사들이 얼마나 커지는지 맨 앞자리에서 봤다. 그래서 지금 그의 일은 둘을 잇는 것이다. 미국의 벤처캐피털·스타트업·Y콤비네이터 인맥을 대만의 하드웨어·반도체 제조사와 연결하는 다리 놓기.

편도 티켓은 무모함이 아니라 비대칭에 대한 계산이었다. 되돌릴 수 있는 쪽을 버리고, 다시 오지 않는 쪽을 잡는다.

별점 대신 하트를 달던 닷새

좋은 아이디어인지 회의실에 묻지 마라. 시장이 일주일이면 답한다.

대만의 창업자들이 첸을 찾아오면 자주 묻는 게 있다. 이 아이디어, 시작해도 될 만큼 좋은가요? 그는 그 질문이 왜 쓸모없는지를 실리콘밸리에서, 특히 페이팔에서 배웠다고 했다.

페이팔엔 세쿼이아가 투자하기로 약속돼 있었다. 그런데 닷컴 붕괴가 왔고 돈은 들어오지 않았다. 알아서 살길을 찾아야 했다. 틸과 머스크와 색스가 다음 방향을 두고 서로 싸우고 따지는 걸 구경하는 건 재밌었지만, “사실 아무도 몰랐어요.”

페이팔의 첫 그림은 팜파일럿이었다. 아이폰보다 7~8년, 블랙베리보다도 몇 해 앞선 기계다. 말하자면 인터넷도 안 되는 흑백 아이폰. 세상 모두가 그걸 주머니에 넣고 다닐 거라고 봤다. 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면 신용카드를 내는 건 한 사람뿐이고, 나머지는 팜파일럿을 꺼내 그 사람에게 돈을 쏘는 식이다. “안 된다는 걸 아는 데 일주일 걸렸어요. 팜파일럿 가진 사람이 없었으니까요.”

답은 이베이에서 나왔다. 경매는 매분 끝나는데, 당시 미국에서 결제는 여전히 수표였다. 부치는 데만 2주, 받아서 은행에 가 현금으로 바꾸는 데 또 한참. 그 2주를 2분, 아니 2초로 줄일 수 있다면?

그림 2-1
2주를 2초로 — 페이팔이 찾은 진짜 시장

결제가 상대에게 닿기까지 걸리는 시간. 가로축은 로그 눈금.

2주는 120만 9,600초다. 이를 2분으로 줄이면 1만 80배, 2초면 60만 4,800배 빨라진다(배수는 옮긴이 계산). 첸은 “2분, 혹은 2초”라고만 했다.

유튜브도 똑같았다. 2005년 4월 말, 막 문을 연 유튜브는 영상 데이트 사이트였다. 검색창엔 영상 제목 대신 ‘앞으로 만날 여자친구·남자친구에게 바라는 것’을 넣었고, 영상엔 별점 대신 하트를 매겼다. 그렇게 닷새였다.

그림 2-2
바닥은 그대로, 위층만 갈아 끼웠다

두 회사가 시장의 답을 찾아간 순서. 단계를 눌러 보세요. 오른쪽 화면은 발언을 바탕으로 한 재현이다.

바닥 기술 — 처음부터 있었다

“기본기는 거기 있었어요.” 페이팔에는 온라인 카드 결제가, 유튜브에는 실시간 트랜스코딩과 임베드가 처음부터 있었다. 몰랐던 건 시장이 어디냐였다.

블로그 대신 영상으로 일기를 쓰는 영상 블로그, 영상 팟캐스트 쪽이 시장일까 싶기도 했다. 결국 답은 마이스페이스와 페이스북 같은 소셜 사이트였다. 거기선 글도 사진도 음악도 나눌 수 있는데 영상만 길이 없었다.

“세 창업자가 밀실에 틀어박혀 아이디어만 궁리했다면 알 수 있었을까요? 계속 더 깊이 파고들기만 했겠죠.”

돈 버는 문제는 한참 뒤였다. 첸에 따르면 유튜브가 수익을 내기 시작한 건 구글 인수 3년 뒤다. 실시간 트랜스코딩, 영상 저작권, 음악 권리, 유통 권리 — 넘어야 할 산을 하나씩 넘고 나서야 비로소 수익을 고민할 수 있었다(5장). “한 걸음 내디뎌 보는 게, 이 길이 맞는지 바꿔야 하는지 아는 가장 좋은 방법이에요.”

아이디어의 점수는 회의실이 아니라 시장이 매긴다. 페이팔은 일주일, 유튜브는 닷새 만에 첫 답안지를 돌려받았다.

마케팅비는 대역폭으로 냈다

광고팀은 없었다. 사용자가 대신 퍼 날랐다.

돌아보면 유튜브의 운명을 가른 결정은 뭐였나. 진행자의 질문에 첸은 “지금 보면 당연하지만”이라는 단서를 달고 첫 번째를 꼽았다. 모든 걸 브라우저 안에서 끝낸 것.

그 전까지는 영상 하나 보려면 운영체제에 맞춰 퀵타임이나 윈도 미디어 플레이어부터 깔아야 했다. 사람들이 올리는 파일도 제각각이었다. 유튜브가 지원한 오디오 코덱만 220종이 넘고 비디오 코덱은 100종이 넘었는데, 영상 하나에 그중 어떤 조합이든 섞여 들어올 수 있었다. 이걸 실시간으로 비디오 코덱 하나, 오디오 코덱 하나로 바꿔 어느 운영체제에서든 브라우저로 바로 재생되게 만드는 일. 개발력이 가장 많이 들어간 곳이 바로 여기였다.

그림 3-1
2만 2,000가지 조합을 하나로

버튼을 눌러 트랜스코딩을 돌려 보세요.

↑ 비디오 코덱 100종+
오디오 코덱 220종+ →
220 × 100 = 2만 2,000가지 이상의 조합한 칸 = 100가지 · 곱셈은 옮긴이 계산
1×1

비디오 코덱 1 · 오디오 코덱 1
어느 운영체제든, 설치 없이 브라우저에서. 그리고 어디로든 퍼 갈 수 있게.

격자 한 칸이 100가지 조합이다. 색칠된 칸은 실제로 섞여 들어오는 제각각의 파일을 상징한다.

더 중요한 건 그다음이었다. 영상을 보려고 유튜브닷컴까지 올 필요가 없었다. 임베드 주소를 복사해 다른 곳에 붙이면 끝. 마이스페이스, 페이스북, 이베이, 크레이그리스트 — 영상을 박아 넣을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사용자들이 알아서 퍼 날랐다. 사용자가 스스로 홍보해 주는, 거의 공짜 마케팅이었다.

“마케팅비는 대역폭으로 냈다고 봐야죠. 초창기 유튜브엔 제대로 된 광고·마케팅팀이 아예 없었어요.”
그림 3-2
밖으로는 공짜 노출, 안으로는 송출 청구서
영상 1편+ 임베드 코드
  • 마이스페이스
  • 페이스북
  • 이베이
  • 크레이그리스트
밖으로 — 사용자가 알아서 퍼 나른 노출. 광고팀이 할 일을 사용자가 했다.
안으로 — 어디서 재생되든 송출 비용은 유튜브 몫. 홍보비가 사라진 게 아니라 대역폭 청구서로 옮겨 갔다.

세 번째 장면은 아이폰이다. 맥월드 샌프란시스코에서 아이폰이 공개됐을 때 앱스토어는 없었다. 첸의 기억으로는 초기 6개월 동안 앱은 전부 애플이 만들었고, 외부 서비스는 유튜브 하나뿐이었다. 애플에게 유튜브는 이 기계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비추는 스포트라이트였다. 책상 앞에서만 보던 영상을 주머니에서 꺼내 어디서든 보게 된 것이다.

휴대폰에서 바로 찍어 올리는 길까지 열리자 판이 또 바뀌었다. 아이폰을 든 사람은 누구나 컴퓨터 앞으로 돌아가지 않고도 영상을 찍고, 올리고, 공유했다. 조회수와 크리에이터 수가 함께 뛰었다.

그림 3-3
책상에서 주머니로, 주머니에서 카메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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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톱 브라우저 안의 영상

첫 아이폰주머니에서 보기

앱스토어 전, 유일한 외부 서비스(첸의 기억)

그다음주머니에서 찍어 올리기

조회수와 크리에이터가 함께 증가

설치 대신 브라우저, 광고 대신 퍼 가기, 책상 대신 주머니. 세 결정 모두 사용자가 대신 일하게 만드는 구조였다.

넷플릭스와 한편이던 시절

지금은 경쟁자, 그땐 동맹. 같은 청구서를 받는 사이였으니까.

창업자는 매일 위기를 맞는다며 진행자가 물었다. 다 같이 회의실에 모여 머리를 싸맨 위기가 있었나. “두 개 있었죠. 지금도 가끔 악몽을 꿔요.” 객석에서 웃음이 터졌다.

첫 번째는 대역폭이었다. 첸의 기억으로는 2006~07년 무렵 넷플릭스와 유튜브 두 서비스가 인터넷 트래픽의 절반 가까이, 40% 안팎을 쓰고 있었다. 지금은 넷플릭스와 유튜브, 틱톡이 서로 경쟁하지만 그땐 두 회사의 네트워크 팀이 따로 만나는 사이였다. 인터넷이라는 플랫폼 위에서 영상 스트리밍이 정말 가능하긴 한지, 함께 확인해야 하는 동맹이었으니까.

그림 4-1
인터넷의 40%를 두 회사가
≈40%

넷플릭스 + 유튜브가 쓰던 인터넷 트래픽. 첸은 “절반 가까이”라고 했다가 “40% 정도”로 고쳐 말했다. 시점은 그의 기억으로 2006~07년 무렵.

한 칸 = 인터넷 전체 트래픽의 1%. 이 시점은 기록과 엇갈린다(옮긴이 메모 2번).

계산은 단순하고 잔인했다. 시청자는 자기 집 인터넷 요금만 내면 되지만, 유튜브는 송출되는 영상 한 편 한 편에 값을 치렀다. 하루 수억 편, 많게는 10억 편. 돈은 계속 나가는데 사용량은 계속 늘었다.

“4K 같은 게 나오면 싫었어요. ‘오, 좋네. 이제 훨씬 비싸지겠군.’”

기기가 늘 때마다 일도 늘었다. 안드로이드용, 아이폰용, 웹용으로 전부 따로 인코딩해야 했다. 인터넷 보급이, 대역폭이, 하드디스크 용량이 유튜브가 크는 속도를 따라와 줄지. 처음 몇 년은 그게 전부였고, 그래서 넷플릭스와 수없이 머리를 맞댔다.

진행자가 이 대목에 한마디를 얹었다. 오늘 이 자리의 창업자들은 토큰을 얼마나 쓰느냐와 씨름하고 있으니 꽤 닮은 문제 아니냐고. 실제로 나란히 놓으면 구조가 겹친다.

그림 4-2
그때의 대역폭, 지금의 토큰

왼쪽은 첸의 발언, 오른쪽은 진행자의 한마디를 deAI가 펼쳐 본 비유다.

구분2006 유튜브 (첸)2026 AI 서비스 (deAI 비유)
원가가 붙는 단위송출되는 영상 한 편마다처리되는 토큰마다
사용자가 내는 돈자기 집 인터넷 요금정액 구독료, 또는 무료
품질이 오르면4K = 더 비싼 송출더 큰 모델·더 긴 맥락 = 더 비싼 추론
버틴 방법넷플릭스 네트워크 팀과 머리 맞대기아직 열린 문제

쓰일수록 원가가 붙는 사업. 성장이 곧 비용인 구조는 20년 뒤 이름만 바꿔 돌아왔다.

구글에 판 진짜 이유

돈도, 서버도 아니었다. 소송이었다.

두 번째 위기는 법이었다. 첸은 혁명적인 기술이 다 그렇듯 가장 큰 장애물은 법률 쪽이었다고 했다. 그것도 나라마다 층층이.

한국 콘텐츠가 몰려오기 전, 초창기 유튜브엔 일본 애니메이션이 쏟아져 들어왔다. 미국엔 디지털 밀레니엄 저작권법(DMCA)이 있었다. 누가 야후 게시판에 저작권이 걸린 이미지를 올려도 야후가 책임지지 않듯, 그 콘텐츠로 돈을 벌지 않는 한 플랫폼은 책임을 면한다는 법이다. 문제는 1990년대 말에 만든 이 법을 10년 뒤에도 그대로 쓰고 있었다는 것. 권리자가 영상을 내리려면 팩스를 보내야 했고, 플랫폼엔 응답할 시간이 3일 주어졌다.

첸의 회상으로 재구성

제작사(전화로) “저희 작품이 유튜브에 올라와 있습니다.”

유튜브“문제가 되는 영상을… 팩스로 보내 주실 수 있을까요?”

철저히 미국식 법이었고, 이대로는 오래 못 간다는 걸 그들도 알았다. 구글에 인수될 무렵 유튜브 트래픽의 절반 이상이 미국 밖에서 들어오고 있었다. 인수 직후엔 비아컴이 10억 달러짜리 소송을 걸었다. 비아컴이 일부 권리를 가진 콘텐츠가 유튜브에 줄줄이 올라오고 있었다.

해법은 기술이었다. 오디오·비디오 지문(핑거프린팅)으로 저작권자를 자동으로 가려내고, 거기서 나오는 수익을 나눈다. 그 몇 해를 다 지나고 나서야 진짜 수익화, 지금 우리가 아는 크리에이터 경제가 시작됐다.

그림 5-1
팩스에서 지문으로

저작권 문제를 처리하는 방식이 바뀌자 비로소 돈이 돌기 시작했다.

2006년식DMCA 절차
  1. 권리자가 전화
  2. “팩스로 보내 주세요”
  3. 응답 기한 3일
  4. 삭제 요청 처리

1990년대 말 미국 법이 기준. 그런데 트래픽의 절반 이상은 해외였다.

그 뒤오디오·비디오 지문
  1. 영상 업로드
  2. 지문 자동 대조
  3. 권리자 식별
  4. 수익 배분

여기까지 와서야 ‘진짜’ 수익화, 그리고 지금의 크리에이터 경제.

“구글 인수를 끝까지 밀어붙인 진짜 동기는 법률 쪽이었어요. 구글의 도움이 절실했거든요.”
그림 5-2
수익화까지 넘어야 했던 계단

첸이 꼽은 순서. 높이는 순서일 뿐, 크기가 아니다.

국경 없는 콘텐츠, 국경 있는 법

객석에서 비영어권 확장은 어떻게 했느냐는 질문이 나왔다. 첸의 답은 의외였다. 가능한 한 오래 ‘미국 회사’로 남고 싶었다는 것이다. 웹사이트는 번역한 적도 없다. 탭 이름 정도를 빼면 콘텐츠는 사용자가 올리는 것이라, 영상만 트랜스코딩하면 어느 언어든 돌아갔다. 검색·태그·제목·설명에 UTF-8만 지원하면 첫날부터 국제 서비스였다. 시청자 절반 이상이 미국 밖에 있어도 미국 델라웨어 법인이라고 버틸 수 있었던 건, 사용자 제작 콘텐츠라는 일종의 ‘사치’ 덕이었다.

50%+

인수 시점, 미국 밖에서 들어오던 트래픽·시청자 비중

번역 안 함

웹사이트 화면. 탭 이름 정도 말고는 손대지 않았다

UTF-8

검색·태그·제목·설명. 이것 하나로 첫날부터 다국어

그 사치는 인수와 함께 끝났다. 하룻밤 새 국제 기업이 됐고, 나라마다 수익화를 시작하자 그의 표현대로 ‘엉망’이 펼쳐졌다. 사용자 제작 콘텐츠를 보는 규칙이 나라마다 다르고,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내려야 하는지, 저작권은 어떻게 볼지도 전부 달랐다. 한 나라씩 들어가 그 지역의 규범 안에 유튜브를 맞춰 넣는 수밖에 없었다.

규모가 커질수록 커지는 건 서버 청구서만이 아니었다. 법률 리스크는 트래픽보다 빨리 자랐고,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다는 판단이 매각을 결정했다.

결혼 전에 창업하라

실리콘밸리는 주소가 아니라 생태계다.

아시아 창업자들의 강점과 약점은 뭐고, 미국과 글로벌 시장에 나가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객석의 질문이었다.

첸은 대만에서 6~7년을 살며 직접 회사를 차려 봤다. 코로나로 1~2년 계획이 길어지겠다 싶자 바로 창업했다. 그 경험이 실리콘밸리와 나머지 세계의 창업 문화가 어디서 갈리는지 보여 줬다. 아시아만의 얘기도 아니다. 시카고에 가면 이런 말을 듣는다. “래리 엘리슨도 여기 있었고 마크 앤드리슨도 있었는데, 다들 실리콘밸리로 가서 회사를 차렸잖아요. 시카고가 뭐가 문제죠?” 대만도 같다. 젠슨 황, AMD의 리사 수… 일찍 미국으로 건너간 창업자들은 하나같이 실리콘밸리로 모였다.

그가 꼽은 차이는 실패에 대한 관용이었다.

“결혼하고 아이 낳기 전에, 누구나 한 번은 창업을 해 봐야 해요. 아이디어가 있으면 붙들고 고민하지 말고 그냥 해 보세요. 되는지 안 되는지 아는 데 3~6개월이면 충분합니다.”

설령 안 되더라도 그 과정에서 배우는 건 다른 어떤 직장에서도 얻을 수 없는 인생 공부라고 했다. 다들 실패하면 뭘 잃을지부터 계산하는데, 무언가를 시도하는 비용은 생각만큼 크지 않다. “다만 갈수록 비싸질 뿐이죠.”

그림 6-1
시도의 값은 갈수록 오른다

첸의 말을 옮긴 개념도. 수치는 없다.

지금아이디어 하나, 3~6개월이면 판가름결혼잃을 것이 늘어난다아이“갈수록 비싸진다”

비행기표 한 장의 비밀

대만으로 가기 전부터 그가 인터뷰에서 자주 받던 질문이 있다. 실리콘밸리는 뭐가 특별한가. 실리콘밸리 회사 대다수에는 이민 1세대나 2세대인 공동창업자가 적어도 한 명은 있다. 다들 실리콘밸리 출신이 아니라는 얘기다. “대체 실리콘밸리행 비행기표의 뭐가 사람을 슈퍼스타 창업자로 만드는 걸까요?”

아이러니하게도 답은 실리콘밸리를 떠나고 나서야 보였다. 위험을 감수하려는 사람들, 오히려 위험을 지라고 부추기는 사람들, 거듭 실패하고도 또 뭔가를 해 보려는 사람들. 늘 ‘다음 10억 달러짜리 아이디어’를 궁리하는 벤처캐피털리스트들. 주변 전부가 그 한 가지에 꽂혀 있다. 대만에선 그런 사람을 찾기가 정말 어려웠다. 대부분은 이렇게 물었다. “그 위험들은 생각해 봤어? 첫발 떼기 전에 다 제대로 계산했고?”

서울대 창업동아리 학생도 비슷한 걸 물었다. 처음 실리콘밸리 네트워크에 파고드는 데 무엇이 가장 효과적이었나. 첸은 페이팔에 들어간 게 큰 행운이었다고 인정하면서, 바깥에서 오는 창업자가 그 경험을 흉내 내려면 이것 하나는 필요하다고 했다.

“불편한 상태를 편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해요.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행사에 억지로라도 가세요. 익숙한 사람들끼리만 어울리는 게 훨씬 쉽겠지만요.”

그가 직접 본 장면이 있다. 팔로알토 한복판에 대만이 돈을 대는 스타트업 모임들이 있는데, 안에선 다들 중국어로 얘기한다. 대만에 있는 거나 다를 게 없다. “주소가 실리콘밸리라고 실리콘밸리가 되는 게 아니에요. 생태계 전체가 실리콘밸리죠.” 그래서 그는 전 세계 창업자를 한 건물에 모으는 Y콤비네이터 같은 프로그램을 높이 쳤다. “첫날엔 그 사람들과 얘기하는 게 편하지 않을 거예요. 그래도 결국 그들이 여러분의 고객이에요. 익숙한 공동체 말고, 진짜 사용자가 뭘 원하는지 알 수 있는 유일한 길이죠.”

실리콘 코리도어

그렇다고 아시아에 강점이 없는 건 아니다. 오픈AI가 등장하고, TSMC를 필두로 미디어텍과 폭스콘 같은 회사들이 이 혁명의 엔진이 되자 그는 다리를 놓기로 했다. 0에서 1을 만드는 아이디어, 벤처캐피털, 창업 문화는 여전히 실리콘밸리의 심장이다. 하지만 하드웨어로, 더 낮은 층위로 내려갈수록 실리콘밸리에서는 만들 수 없다. 미국도 애쓰고 있고 조금씩 나아지지만, “2026년에 뭔가를 만들려면 여전히 실리콘밸리와 아시아 일부를 엮어 시너지를 내는 게 최선”이라는 게 그의 판단이다.

올여름 Y콤비네이터의 개리 탄과 얘기해 보니, 요즘 YC 스타트업 상당수가 어떤 식으로든 하드웨어와 엮여 있었다. 아이디어도 돈도 창업자도 다 있는데, 만들 곳이 필요하다. 탄도 그걸 봤고, 그래서 아시아로 온다. 첸은 이곳 창업자들도 초대하고 싶다며,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계속 이어지는 다리로 만들겠다고 했다.

그림 6-2
첸이 그린 분업 지도

“두 지역을 잇는 다리는 훨씬 넓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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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위에서 — 개리 탄(YC)의 아시아 방문, 이 지역 창업자 초청. 일회성이 아니라 계속 이어지는 행사로.

실패에 관대한 생태계와 만들 줄 아는 생태계. 그가 서울에 들고 온 건 그 둘을 잇는 다리였다.

책상을 나눠 쓴 두 사람

“6개월 뒤에도 일자리가 있을지는 모릅니다. 대신 인생에서 가장 신나는 6개월이 될 거예요.”

좋은 팀, 좋은 공동창업자란 뭔가. 연세대 학생의 질문에, 공동창업자 때문에 몸도 마음도 지쳐 그만두고 싶을 땐 어떻게 하느냐는 꽤 구체적인 질문이 따라붙었다. 진행자가 “아주 노골적이네요, 누구 특정한 사람이 있나 본데요” 하고 웃었다.

첸의 답은 개인적이었다. 그에게 공동창업자는 필수였다. 방향이 맞는지조차 모르는 초기엔 특히. “피벗하라는 말은 쉽죠. 그런데 언제 피벗할지, 무엇을 바꾸고 무엇을 지킬지는 정말 어려운 결정이에요.”

그는 공동창업자들이 서로 다른 분야에서 오는 게 좋다고 했다. 겹치는 영역은 최소한으로, 다만 가장 중요한 것에서는 겹치게. 유튜브 CEO 채드 헐리는 제품·디자인 쪽 사람이었다. 초기 엔지니어링과 시스템, 제품은 첸이 맡았고, 헐리는 사업개발과 마케팅을 챙겼다.

그림 7-1
겹치는 건 최소한으로, 단 가장 중요한 데서

인수 뒤에도 3년 동안 둘은 책상을, 사무실을 같이 썼다.

문이 닫히면 솔직한 대화가 오갔다. 피드백을 숨기지 않고, 저지른 실수를 인정하고. 나에게 보고하는 사람이 아니라 대등한 위치에서 제품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 — 그게 그에게 공동창업자였다.

팀 문화도 그랬다. 엔지니어로 들어왔든 마케터로 들어왔든 직함과 상관없이 누구에게서나 제품 아이디어를 받았다. 회사 미팅에 앉은 모두가 그 제품의 사용자이니, 그들의 피드백도 똑같이 값지다는 논리다. 그러자 사람들은 앱을 더 쓰고, 잘못된 점을 더 말했다. 그가 가까이 지켜본 대만·아시아 회사들은 달랐다. 특히 제품 비판이라면 대개 입을 다무는 쪽을 택했다. “그게 실리콘밸리와의 핵심 차이예요. 제품을 정말 많이 쓰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 피드백은 누구 것과도 똑같이 중요하죠.”

6개월 뒤를 약속하지 않는 채용

초창기에 개인 신용카드 한도까지 긁어 가며 서버를 돌렸다는 일화에 감동했다는 한 CEO가 물었다. 유튜브는 누구나 쓰는 제품이라 직원들이 아끼기 쉬웠겠지만, 특정 장르나 연령층만 쓰는 제품이라면 어떻게 직원들이 진심으로 아끼게 만드나. 로블록스에서 일하는데 로블록스 게임을 한 번도 안 해 봤다면?

첸은 위에서부터라고 답했다. 유튜브는 이사회에 제품 결정이나 각종 지표를 보낼 때, 보낼 수 있는 건 전부 팀원들을 참조로 넣었다. 이사회에서 이번 달 무엇을 하기로 했고, 그게 당신에게 맡긴 일과 어떻게 이어지는지. 자기 일이 회사 전체에서 어떤 의미인지 알게 하는 것이다.

채용은 더 솔직했다. 면접 보러 온 사람은 대개 방금 페이스북이나 구글 면접을 보고 온 사람이었다. 실력은 이미 검증됐으니, 오히려 지원자가 회사를 면접 보는 셈이었다.

첸이 지원자들에게 했다는 말

첸“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유튜브에 오시면 6개월 뒤에도 일자리가 있을지 모르겠어요. 이게 저희 번 레이트예요. 스토리지, 대역폭, 데이터센터 전기, 하드웨어에 이만큼 나갑니다. 구글 같은 데 가시면 6개월 뒤에도 직장이 있을 확률은 더 높겠죠.”

첸“그래도 이건 약속할 수 있어요. 앞으로 6개월은 인생에서 가장 신나는 6개월이 될 겁니다. 핵심 지표가 2주마다 두 배씩 늘고 있어요. 오늘 하루 10만 뷰면, 2주 뒤엔 20만, 그다음엔 40만이에요.”

첸“그게 싫다면 괜찮아요. 어차피 유튜브 같은 스타트업엔 안 맞는 분일 테니까요.”

그림 7-2
2주마다 두 배 — 면접장에서 꺼낸 숫자

세로축은 로그 눈금. 슬라이더로 외삽 구간을 바꿔 보세요.

26주

실선의 세 점(하루 10만 → 20만 → 40만 뷰)만 첸이 말한 숫자다. 점선은 같은 속도가 이어진다고 가정한 단순 외삽(옮긴이 계산)으로, ‘그 6개월’이 얼마나 가팔랐을지 감을 잡기 위한 장치일 뿐이다. 실제 성장은 어딘가에서 꺾인다.

공동창업자나 창업가를 영입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했다. 위험이 크지만 보상도 정말 크다는 걸 숨기지 않는 것.

제품을 아끼게 만드는 비결은 거창하지 않았다. 숫자를 숨기지 않는 것. 위험도, 성장도.

유튜브 만든 아빠의 틱톡 금지령

책 한 권을 20~30분 붙잡고 있을 수 있는가.

진행자가 부모로서 물었다. 유튜브를 만든 사람은 AI 시대에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나.

“틱톡은 못 깔게 해요.” 객석이 터졌다. “아빠 제품에 충성해야죠.”

농담 뒤의 대답은 진지했다. 부부는 아이들이 기기를 쓰는 데 열려 있는 편이지만, 걱정도 한다. 어른들은 인터넷이 주머니에 들어오기 전을, 아이폰 이전을, AI를 들고 다니기 전을 기억한다. 열넷, 열여섯인 그의 아이들은 초등학교 1~3학년 무렵 그 변화를 맞았고, 태어날 때부터 아이폰이 있었다.

네다섯 살 아들이 가장 많이 쓰는 앱이 아빠가 만든 앱이라는 걸 봤을 땐 뿌듯했다. 다음 세대가 우리가 만든 걸 쓰고 있구나. 그러다 매일 밤 9시 반이면 “이제 그만 보고 자라”고 말해야 하는 때가 왔다.

“책 한 권을 20~30분 붙잡고 앉아 있을 수 있을까요? 20~30분이면 이미 긴 거예요. 짧은 트윗 말고, 기사 한 편을 끝까지 읽을 수 있느냐는 거죠.”

그는 미국 학교들에서 나오는 초기 신호를 전했다. AI가 넘쳐 나고 쓰기가 너무 쉬워지면 문제 해결력과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것. 둘 사이 어딘가에서 타협점을 찾게 되겠지만, 맞는 모델을 찾는 데는 시간이 걸릴 거라고 했다.

아시아에서 키우고, 미국으로 돌려보낸 이유

한 청중이 질문을 넓혔다. 아이들이 스무 살이 돼서 창업하겠다고 하면 뭐라고 하겠나. 어떤 분야, 어떤 문제를 풀어 보라고 하겠나. 첸은 먼저 아이들이 걸어온 길을 얘기했다. 계획했다기보다 운이 좋았다고.

그림 8-1
같은 해 대만으로, 고등학교는 미국으로

두 아이가 자란 곳. 점선은 2019년 대만 이주.

미국 (출생~초등 저학년)아시아 · 미국계 학교미국 기숙학교 (고교)

출생 연도와 귀국 시점은 발언(현재 14·16세, 2019년 이주, 초1·초3까지 미국, “고등학교부터는 미국”)으로 역산한 근사치다.

미국에서 태어난 큰아이는 초등 3학년, 작은아이는 1학년까지 미국 학교를 다녔다. 그러고는 일곱·아홉 살부터 열서너 살까지 아시아에서 자랐다. 미국계 학교였지만 그 시간이 정서 발달에 컸다고 그는 봤다. “아시아계 미국인은 늘 인종적 소수자예요. 옳다고 믿는 걸 위해 버텨야 하지만, 다수가 될 일은 없죠.” 아시아에선 아무도 어디서 왔느냐고 묻지 않았다. 그냥 속해 있었다.

그런데 고등학교는 미국으로 보냈다. 기숙학교든, 부모가 함께 돌아가든. 그가 아이들에게 바라는 건 목적지가 아니라 태도다. 야망 있고, 스스로 움직이는 사람. 부모나 어른, 교사가 시켜서가 아니라 자기 동기로. 그건 아시아보다 미국 학교에서 키우기 쉽다고 봤다. 그리고 세상일을 동양과 서양, 두 관점으로 볼 줄 아는 것.

무엇을 할지는 강요하지 않는다. 격려하되, 아이가 열정을 보이는 쪽을 밀어 줄 뿐이다. 창업 쪽이면 좋겠다는 바람은 숨기지 않았다. 마지막엔 객석이 또 웃었다.

“프로그래밍을 그렇게 가르치려 해도 손도 안 대더니, 요즘 앤트로픽 AI로 파이썬을 짜고 있더라고요. 뭐, 거의 같은 거죠.”

유튜브를 만든 사람이 지키려는 건 결국 20~30분의 집중력이다. 그리고 남이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움직이는 힘.

모른다고 두 번 말했다

만드는 것도 퍼뜨리는 것도 공짜가 되면 무엇이 남나. 유튜브 창업자의 대답은 “모르겠다”였다. 그리고 힌트 하나.

이날 가장 어려운 질문은 넥슨에서 왔다. “20년 전 유튜브는 콘텐츠 유통의 병목을 없애고 누구나 세계에 영상을 올리게 했습니다. 이제 생성형 AI가 제작의 병목까지 없애는 것 같습니다. 만드는 것도 퍼뜨리는 것도 무한에 가까워지면, 승자를 가르는 희소한 자원은 뭘까요? 오늘 유튜브를 처음부터 만든다면 무엇을 중심에 두겠습니까?”

“고백하자면 저도 똑같이 궁금해요. 질문 중에 제일 어려웠어요. 답을 정말 모르거든요.”

생성형 AI가 만드는 콘텐츠는 이미 거의 구분이 안 될 만큼 좋다. 수익은 어떻게 나누고, 브랜딩과 저작권은 어떻게 할지 — 질문들이 폭풍처럼 몰려온다. “유튜브에 더 이상 없다는 게 다행이라고 느끼는 순간이에요. 그 결정을 안 해도 되니까요.” 그가 아는 건 하나다. 유튜브는 크리에이터, 시청자, 광고주 가운데 늘 크리에이터를 가장 앞에 뒀다. 크리에이터 없이는 지금의 유튜브도 없다. AI가 그 자리에 어떻게 끼어들지는 앞으로 몇 년 지켜보겠다고 했다.

마지막 질문도 같은 곳을 찔렀다. AI가 소프트웨어와 제품을 만드는 비용을 거의 0으로 끌어내리고 있다. 최상위 모델이 기능 하나 내놓으면 내 사업이 통째로 사라질 수 있다. 이런 시대에 사업에서, 팀에서 가장 희소한 건 뭔가.

“솔직히 답이 없어요. 다들 지금 그 질문을 하고 있잖아요.” LLM조차 순식간에 갈아탈 수 있고, 쌓아 둔 메모리까지 들고 옮겨 갈 수 있다. 가장 밑바닥 층에서 이미 그게 된다면… 그래서 그가 거는 희망은 충성도다.

그림 9-1
갈아타기 비용 — 끈이 남는가

첸이 든 대비를 옮긴 개념도.

LLM 기반 서비스
  • 모델 교체순식간
  • 메모리통째로 들고 이사
  • 남이 베끼는 데이틀

사용자와 서비스 사이에 남는 끈이 거의 없다.

유튜브 채널
  • 업로드공짜, 열린 플랫폼
  • 구독자쓸수록 쌓인다
  • 채널 주소이미 바깥에 퍼져 있다

쓸수록 서비스와 사용자 사이에 유대가 생긴다.

유튜브는 열린 플랫폼이다. 업로드는 공짜다. 하지만 구독자가 생기고 채널 주소가 바깥에 퍼지기 시작하면 서비스와 사용자 사이에 끈이 생긴다. 남이 이틀 만에 똑같이 만들 수 있는 시대라면, 첫날부터 그런 끈을 심을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게 그의 말이다.

“사용자가 1분 더 쓸 때마다 제품에 조금씩 더 붙게 만드는 거죠. 나쁜 방식 말고, 양쪽 모두에게 생산적인 방식으로요.”

유튜브 창업자는 두 번 ‘모른다’고 했다. 그 빈칸을 채우는 쪽이 다음 유튜브가 될 것이다.

덮으며

20년 전 청구서가 다시 날아온다

성공담 말고 비용 구조로 읽으면, 이 대담은 지금 AI 산업 얘기다.

이 대담을 성공담으로만 들으면 아깝다. 첸이 진땀 뺀 장면들을 모으면 유튜브가 받아 든 청구서 세 장이 나온다. 쓰일수록 커지는 원가(대역폭), 규모가 커질수록 커지는 법률 리스크(저작권), 그리고 공짜 플랫폼에서 해자를 만드는 문제(충성도). 20년이 지나 AI 스타트업 앞에 똑같은 청구서가 놓였다. 토큰 원가, 학습 데이터·생성물의 저작권 분쟁, 언제든 갈아탈 수 있는 모델.

한 장으로
청구서 세 장, 20년 간격
원가No.1
2006 유튜브
송출되는 영상마다 대역폭. 4K가 반갑지 않았다.
2026 AI
처리되는 토큰마다 추론비. 모델이 좋아질수록 비싸진다.
법률No.2
2006 유튜브
팩스·3일짜리 DMCA, 비아컴 10억 달러 소송 → 구글에 매각.
2026 AI
학습 데이터와 생성물을 둘러싼 저작권 분쟁.
해자No.3
2006 유튜브
구독자와 채널 주소가 만든 유대.
2026 AI
미정. 첸도 “모른다”고 했다.

deAI 메모 — 투자자가 가져갈 세 가지

  1. 원가가 사용량을 따라 크는가. 유튜브는 조회수가 늘수록 송출비가 늘었고, 4K가 반갑지 않았다. AI 서비스도 쓰일수록, 모델이 좋아질수록 추론비가 는다. 규모가 커질 때 매출총이익률이 같이 좋아지는지부터 본다.
  2. 법률 리스크를 누가 떠안는가. 첸이 꼽은 매각 동기는 돈이 아니라 소송 방패였다. 저작권 분쟁이 큰 영역의 AI 기업일수록 독자 생존보다 대형 플랫폼과의 제휴·매각이 출구가 될 가능성을 열어 둔다.
  3. 1분 더 쓸수록 붙는 구조가 있는가. 구독자·채널 주소처럼 사용자가 쌓은 자산이 서비스 안에 남는지. 모델만 바꿔 끼우면 끝나는 서비스는 기능이 좋아도 해자가 얇다.

하나 더. 첸이 서울에 들고 온 ‘실리콘 코리도어’는 AI 창업이 하드웨어 쪽으로 내려가는 흐름을 반영한다. 아이디어와 돈은 실리콘밸리에, 만드는 힘은 대만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에 있다는 그의 지도는 반도체·부품 공급망을 보는 투자자에게도 참고할 만한 관점이다.

회고는 기억이다. 몇몇 시점과 수치는 기록과 엇갈린다(아래 옮긴이 메모). 그래도 이야기의 뼈대 — 시장에 묻는 피벗, 대역폭이라는 원가, 소송이라는 벽, 숫자를 숨기지 않는 채용 — 는 흔들리지 않는다. 투자 권유가 아니라 읽기 위한 메모다.

옮긴이 메모. 유튜브 자동 생성 영어 자막을 바탕으로 옮겼다. 인용문은 말맛을 살려 의역했고, 수치(코덱 220여·100여 종, 트래픽 40%, 2주·2분·2초, 하루 10만→20만→40만 뷰, 응답 기한 3일, 10억 달러 소송, 인수 3년 뒤 수익화 등)는 발언 그대로다. 곱셈·배수와 외삽은 옮긴이 계산이라고 따로 밝혔다. 자막이 뭉갠 고유명사는 문맥으로 바로잡았다 — ‘Shinju’는 신주(新竹, Hsinchu), GV 출범을 함께했다는 ‘David Crane’은 GV의 데이비드 크레인(David Krane)으로 보인다(대조 필요). 질문 출처 중 ‘Dev Cinema meeting’은 확인하지 못했다. 진행자는 청중이 ‘JP의 질문’이라고 부른 점으로 미루어 SBVA 이준표 대표(JP Lee)로 보이나, 자막만으로는 확정할 수 없다(대조 필요).
기억과 기록이 엇갈리는 곳 — 옮긴이 보충 7건
  1. 매각 시점. 첸은 ‘14개월쯤 뒤’라고 했다. 구글의 인수 발표는 2006년 10월(16억 5,000만 달러, 주식 거래)로, 도메인 등록·창업(2005년 2월)부터 치면 약 20개월이다.
  2. 트래픽 40%. 넷플릭스의 스트리밍 서비스는 2007년 1월에야 시작됐다. 두 서비스 합산 비중이 이 수준으로 집계된 건 2010년대 초 북미 피크 시간대 자료에서 두드러진다. 본문은 첸의 기억(2006~07년)대로 옮겼다.
  3. 브라우저 재생. 첸은 ‘2004년 말 코덱이 HTML 표준에 들어왔다’는 취지로 말했지만, 초기 유튜브 재생은 플래시 플레이어(FLV) 기반이었고 HTML5 비디오는 2010년대에 들어서야 퍼졌다. ‘설치 없이 브라우저에서 재생’이라는 취지만 살렸다.
  4. DMCA. 발언은 ‘1997년에 만든 법’이지만 실제 제정은 1998년이다. 본문엔 ‘1990년대 말’로 적었다.
  5. 수익화 ‘인수 3년 뒤’. 유튜브 파트너 프로그램(광고 수익 배분)은 2007년에 시작됐다. 본격적인 수익화를 가리킨 말로 보인다.
  6. 첫 아이폰. 원조 아이폰의 YouTube 앱은 애플이 직접 만든 기본 앱이었고, 지도(구글 데이터)처럼 외부 데이터를 쓴 기본 앱도 있었다. ‘외부 서비스는 유튜브뿐’은 첸의 기억이다.
  7. 참고 — 2주마다 두 배. 유튜브는 2006년 7월 하루 재생 1억 회를 넘겼다고 알려졌다. 그림 7-2의 점선은 이와 무관한 단순 가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