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린 산을
오르고 있다면
못 파는 세일즈맨의 아들은 모건스탠리 첫 PB 연수 기수가 됐고, 수천억 원짜리 계좌를 굴렸다. 그리고 쉰 즈음, 브로드웨이 객석에서 한 대사에 얻어맞았다. "그렇게 벌고도, 혹시 산을 잘못 탄 건 아닌가?" 40년 월가 PB 매트 러드머가 신간 『The Right Mountain』에서 그린 '진짜 부'의 지도.
- 주장순자산 하나로 부를 재면 '틀린 산'을 오를 위험이 크다. 진짜 부는 일·재정 / 마음·몸 / 관계·공동체 / 세상 이해 네 칸이 완벽하지 않아도 '기능'하는 상태다.
- 근거성공한 경영자들에게 "지금 가장 신경 쓰는 곳"을 물으면 전원 '일' 코너로 갔다. "돈과 자유가 충분하다면?"이라고 묻자 대부분 관계·마음 코너로 흩어졌다.
- 액션돈은 3포트(1~5년 안전기지 · 5~10년 놀이터 · 10년+ 분산 주식)로 배경에 밀어두고, 비어 있는 칸에 시간이든 장소든 작은 '그릇' 하나부터 만든다.
연봉 1만 달러, 늘 만족하던 남자
러드머의 첫 스승은 하루 300km를 운전하며 못을 팔던 아버지였다.
뉴저지 티넥의 평범한 중산층 집. 아버지는 매일 차를 몰고 뉴저지 턴파이크를 오르내리며 스테이플러 심과 못을 팔았고, 어머니는 '애크미 리벳 앤 스크루'라는 공장의 비서였다. 지척이 뉴욕이었지만 맨해튼 구경은 거의 못 했고, 근사한 식당 대신 맥도날드를 자주 갔다. "아빠, 우리 왜 맨날 여기야?" 나중에 알고 보니 그가 성인식(바르 미츠바)을 치르던 해, 아버지의 연 수입은 1만 달러 남짓이었다.
그런데 러드머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가난한 사람이 아니라 늘 만족하던 사람이다. 말수가 적었고 조언도 거의 하지 않았다. 아들이 뭔가 해냈다고 자랑하면 딱 한마디가 돌아왔다. "그래서, 그게 너를 행복하게 하니?"
관중 천 명이 들어찬 고교 농구 경기가 끝난 뒤, 집으로 가는 차 안.
아버지최선을 다했지?
매트응.
아버지그럼 됐다, 됐어.
경기 평가는 한 번도 없었다. 대신 이런 말은 했다. "관중석 좀 그만 봐라. 네 경기를 해." 훗날 아이들 농구 코치를 해 보니, 아이들은 공 대신 스탠드를 쳐다보고 있더란다. 부모의 인정을 확인하려고. 러드머는 그 습관이 어른이 돼서도 아무도 모르게 계속된다고 말한다.
"누가 '잘했다'고 해 줄 때 그렇게 기분 좋은 건, 속에서 스스로 그렇게 느끼지 못하고 있어서예요. 그 공허함이 결국 사람을 텅 비게 만들죠."— 매트 러드머
진행자 윌리엄 그린은 이걸 버핏의 '내부 점수판(inner scorecard)'에 빗댔다. 몇 해 전 러드머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그린이 들은 일화가 있다. 어린 매트가 동네 유대인 커뮤니티센터에서 사물함 지기로 일할 때, 지역의 내로라하는 남자들이 지나가며 말하곤 했단다. "네 아버지는 참 좋은 사람이야." 대학도 2년 다니다 만, 내세울 것 없던 사람이었다. 러드머는 그때 '평범한 선함'이 존경받는 장면을 봤고, 그 뒤로 평생 '스승을 따르는 학생'이 됐다고 했다.
냉동 고기 500달러어치와 점심시간의 침입
자격증이 없으면 이야기를 만들어라 — 타고난 세일즈맨의 등반 초입.
대학 2학년과 3학년 사이 여름, 그는 트럭을 빌려 급속 냉동 고기와 해산물을 팔았다. 아침에 500달러어치 청구서를 받고, 해 지기 전까지 다 팔아야 한다. 못 팔면? "저녁마다 고기랑 해산물만 먹게 되는 거죠." 주 무대는 미용실이었다. 젊은 청년이 엄마들 앞에서 "남편 저녁상에 딱"이라고 외치면 잘 팔렸다. 매일 800~900달러를 쥐고 퇴근했고, 그 돈으로 학비를 보탰다.
정신의 근육도 일찍 생겼다. 열네 살 무렵 아버지가 건넨 나폴레온 힐의 『생각하라 그리고 부자가 되어라』를 읽고 "생각이 곧 실체"라는 걸 깨달은 소년은, 8학년 때 방 벽에 목표를 써 붙인 '동기부여 상자'를 만들었다. 그러다 친구 집 서재에서 지두 크리슈나무르티의 『삶에 대한 주석』을 펼친다. 목표를 향하지 않는 방식으로 마음을 쓰는 법이었다. 대학 1학년이 되자 아버지가 명상 방석을 보내 줬다. 문 닫힌 방 안의 조용한 내면 수련과, 밖에서의 맹렬한 성취. 그의 인생은 이때부터 두 갈래였다.
시카고 대학교 경영대학원(부스)은 대기자 명단에 그를 올렸다. 그는 기다리지 않았다. 생애 첫 혹은 두 번째 비행기를 타고 시카고로 날아가, 면접도 안 받던 시절 입학처장 사무실 앞에 하염없이 앉아 있었다. 처장은 정중히 그를 만나 줬고, 일주일 뒤 야간 과정 합격 통지가 왔다. 그는 곧바로 주간으로 옮겼고, 유진 파마의 수업을 들었다. 인덱스와 효율적 시장을 배운 그 교실이 훗날 그의 투자 철학이 된다.
모건스탠리에 들어간 방식은 더 대담했다. 시카고에선 학생마다 면접 입찰용 포인트 500점을 받는다. 집안 배경도 인맥도 없던 그는 모건스탠리 한 곳에 500점을 몰빵할 수 없었다. 분산했고, 당연히 떨어졌다. 그래서 점심시간에 옷깃을 세우고 커리어센터를 가로질러 면접실 문을 열었다.
점심을 먹던 투자은행가 세 명이 고개를 든다.
매트여러분, 이게 얼마나 이상한 방식인지 압니다. 그래도 저는 이 일이 정말 하고 싶고, 저를 만나 보시는 게 여러분께도 좋은 면접이 될 겁니다.
은행가들(서로 쳐다보며 '누구야 이 친구') …앉으세요.
시카고에서 2차 면접에 불린 두 명 중 하나가 됐고, 다른 경영대학원 출신들과의 경쟁을 거쳐 최종 다섯 명에 들었다. 모건스탠리 첫 투자자문(PB) 연수 기수였다. 자격증(시리즈 7)은 그 전에 미리 따 뒀다. 아버지 지인이 다니던 페니스톡 중개사에서, 양면 칫솔 회사 IPO를 팔면서. "양면 칫솔을 팔 수 있으면 세상 최고의 투자 상품이겠죠."
- 1982년 무렵러트거스대 경제학 전공·철학 부전공 졸업. 1978년 1만 8천 명 규모 교내 디스코 대회를 기획
- 시카고 부스대기자 명단 → 학장실 앞 버티기 → 야간 입학 → 주간 전환
- 1984~85모건스탠리 첫 PB 연수 기수(5명). 직원 1천 명 시절, 2년간 블록·옵션 데스크를 돌며 훈련 후 "전화기 받았지? 이제 가"
- ~1998모건스탠리 최장수 파트너십 중 하나. 딘위터 합병으로 막을 내림
- 이후DLJ(최대 자문 그룹 리드) → 크레디트스위스 → 스미스바니(샌디 웨일) → 다시 모건스탠리, 디렉터
- 2000브로드웨이 연극 「The Wrong Mountain」 관람
- 2008금융위기. '커튼 뒤가 보이는' 순간
- 2010쉰 번째 생일 파티 — 가장 친한 친구들끼리 서로를 몰랐다
- 2013Aligned Wealth Management 창업
- 2017~2022웨스트체스터 '얼라인 센터' 전면 가동, 2022년 책 집필에 전념
- 2026『The Right Mountain: Practical Wisdom for Achieving True Wealth』 출간 (공저 크리스틴 케이, 편집 윌리엄 그린)
벽에 쓴 단어, '아티큘레이션'
야망은 좋은 엔진이다. 끄는 법을 모를 때만 빼고.
아침 7시 출근, 저녁 7시 퇴근. 출근길엔 매일 토니 로빈스 테이프. 집에 오면 너무 지쳐 탄산수만 들이켜서, 훗날 아내가 된 여자친구가 놀러 오면 방에 침대와 탄산수병뿐이었다. 1980년대 『허영의 불꽃』 시절의 월가, 그는 그 세계에 홀딱 취해 있었다. 그리고 그 취기가 어디까지 갔는지 보여 주는 장면이 있다.
막내딸 그레이스가 열네 살쯤이었을 때, 정성 들여 만든 미술 작품을 아빠에게 보여 줬다. 퇴근한 '비즈니스맨'은 물었다. "그레이스, 이게 뭐니?" 딸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쳐다보자 다시 물었다. "설명해 볼래?" 그리고 또. "말로 표현해 볼래?" 급기야 벽에 'articulation(표현력)'이라고 써 붙였다.
"화가는 그림으로 말하지, 말로 말하지 않아요. 최악의 부모 노릇이었죠. 속으로는 '그림으로 어떻게 먹고살래'가 걱정이었던, 불안한 아빠였던 겁니다."— 매트 러드머
방을 나서며 본 딸의 내리깐 눈. 아내와 이야기를 나눈 뒤에야 그는 실수를 온전히 봤고, 일주일쯤 지나 돌아가 사과했다. 그게 '야망의 그림자'를 처음 알아본 순간이었다. 그는 대학 때 배운 조하리의 창을 꺼낸다.
안다
모른다
"진짜 부의 한 형태는 자기 자신을 온전히 보는 능력이에요." — 원하는 부분만이 아니라 전부를.
그가 이 대담에서 몇 번이고 반복한 문장이 있다. 성취는 성취감이 아니다. 성취는 길 위의 한 정류장이지 종착역이 아닌데, 그때 그에게는 종착역이었다. 그리고 그 조건화는 개인의 것만이 아니었다. 홀로코스트 이후 2~3세대 유대인으로서, 첫 세대는 생존이, 다음 세대는 성취가 전부였다. 그가 모건스탠리로 출근할 때마다 어머니는 문간에서 외쳤다. "콩 따러 가라, 잭!(Go get the beans, Jack)"
후일담. 그레이스는 지금 브루클린의 한 초등학교 미술 교사다. 사랑하는 일을 잘하고, 세상에 보탬이 되고, 돈도 번다. "아버지로서 뭘 더 바라겠어요." 그린이 덧붙였다. "형편없는 육아를 버텨 냈네요."
브로드웨이에서 만난 책 제목
"그 많은 돈과 성공, 혹시 산을 잘못 탄 건 아닌가?"
야망을 매일 24시간 켜 두면 재미가 없다. 그래서 그는 가끔 '의도 없는 날'을 만들었다. 아무에게도 행선지를 말하지 않고 미드타운을 빠져나가 극장가에서 표 한 장을 사거나, 워싱턴 스퀘어에서 사람 구경을 하거나, 소호 카페에 앉았다. 2000년 어느 날 그렇게 들어간 연극의 제목이 「The Wrong Mountain(틀린 산)」이었다.
무대 위엔 브로드웨이에서 크게 성공한 극작가와, 가난하고 불행하지만 자기 삶이 옳다고 확신하는 시인이 있었다. 시인이 극작가에게 날린 한마디가 객석의 러드머를 정통으로 때렸다. "이봐, 그 돈과 성공을 다 가지고도, 혹시 산을 잘못 탄 건 아닌가 생각해 본 적 있나?" 크리슈나무르티를 읽고 명상을 해 온 자신도, 정작 그 질문 앞에서 흔들렸다. 그 대사는 26년 뒤 책 제목이 된다.
결정타는 2008년이었다. 애널리스트들이 여전히 종목 추천을 늘어놓을 때 그는 생각했다. "우리 방금 그 예측들이 다 틀렸다는 걸 배웠잖아." 아이폰이 나오고 숫자가 투명해지면서, 업계는 오즈의 마법사 커튼이 걷히는 순간을 맞았다. 마침 업계는 '투자 매니저'를 '웰스 매니저'로 바꿔 부르기 시작했다. 그는 물었다. 내가 웰스 매니저라면, 웰스(wealth)가 대체 뭔가?
그는 포트폴리오에서 답의 모양을 찾았다. 잘 분산된 포트폴리오가 수익률을 보장하진 않지만 좋은 분포를 만들어 주듯, 몇 가지 조건이 갖춰지면 충만해질 확률이 크게 올라간다. "누가 '이렇게 하면 행복해진다'고 하면 그냥 나가세요. 보장은 없어요. 하지만 좋은 조건이 좋은 결과를 낸다는 건 보장됩니다." 그는 이걸 피아노에 빗댔다. 음표 한두 개가 빠져서 음악이 안 흐르는 사람들이 있다. 음악이 흐르는 사람은 불이 켜져(lit up) 있고, 안 흐르는 사람은 성공을 "꾸역꾸역 견디고(grimly getting through)" 있다. 그는 그런 사람을 아주 많이 봤다. 그 자신도 그랬다.
진짜 부의 네 칸
켄 윌버의 지도를 빌려, 인생을 한 차원이 아니라 네 차원으로 본다.
철학자 켄 윌버의 통찰은 단순하다. 바깥이 있는 모든 것에는 안이 있다. 그리고 하나가 있으면 여럿이 있다. 그러면 칸이 네 개 생긴다. 개인의 바깥(셀 수 있는 것), 개인의 안(주관적 경험), 우리 사이의 안(문화·관계), 우리 사이의 바깥(시스템). 러드머는 이걸 생활 언어로 옮겼다.
점은 발언의 묘사("셀 수 없이 많은 사람" / "상당수" / "한두 명")를 옮긴 개념도이며 실제 인원이 아니다. 2단계에서 '일' 칸에 몇 명이 남았는지는 언급이 없다.
"이 사회엔 어떤 수준의 외로움이 있다는 걸 그 방에서 봤어요." 러드머 자신이 가장 가난했던 칸도 공동체였다. 아침에 기차를 타고 출근해 사무실에서 일만 하다 늦게 기차를 타고 귀가하는 날들. 가족은 훌륭했지만 그 바깥이 비어 있었다. 2010년 쉰 번째 생일, 미트패킹 디스트릭트의 원탁에 가장 친한 불교 친구, 유대교 친구, 농구 친구, 직장 친구를 불렀는데 — 서로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뭐야, 아무도 서로를 모른다고?"
그래서 그는 '그릇(container)'을 만들었다. 2013년 창업 즈음부터 공간을 찾던 그는, 아일린 피셔 본사에서 명상하다가 허드슨강이 내려다보이는 옛 온실 제작 공장 건물을 발견했다. 집도 직장도 아닌 '제3의 장소'. 일도 하고, 다른 형태의 부도 가꾸고, 함께 어울리는 곳. 10년 임대에 10년 연장 옵션을 걸었고, 최근 다시 10년을 연장했다. "건물은 하드웨어고, 소프트웨어는 사람이에요." 그린이 이 사무실을 같이 쓰다 러드머를 만났고, 닉스가 NBA 파이널에 올랐을 땐 동네 이발소·카페 사람들까지 몰려와 함께 응원했다.
"누가 '오늘 순자산을 두 배로 불려 줄까, 공동체를 최대한 키워 줄까' 물으면, 저는 하루 종일 공동체입니다."— 매트 러드머
건물을 빌릴 필요는 없다는 게 그린의 반론이자 보충이다. 그는 친구 몇과 매주 금요일 아침, 세계 어디에 있든 대화하는 시간을 고정해 뒀다. 돈 안 드는 그릇이다. 러드머의 처방도 작다. 매주 화요일 저녁은 무슨 일이 있어도 친구와 식사. 매일 아침 운동 대신 격일로 앉아서 명상. 커리어와 아무 상관 없는 대학 강좌 하나. 그리고 '시간 그릇'도 있다.
그린도 그 차원을 하나 발견했다. 러드머가 '더 재미있게 살려고' 산 닉스 시즌권을 빌려 아들 헨리와 경기를 보고, 아파트 앞에 내려 줄 때였다. 차에서 내리던 아들이 말했다. "아빠, 오늘 진짜 하이라이트였어." 그리고 잠깐 멈췄다가. "…인생의." 농구를 하나도 모르는 아빠는 그 저녁을 '부의 한 형태'로 기록했다.
숫자 하나를 계기판 일곱 개로
목표는 만점이 아니다. 모든 바늘이 '기능선'을 넘는 것이다.
러드머가 실무에서 하는 일은 이렇게 요약된다. 『더 넘버』의 숫자 하나, 순자산을 일곱 개의 숫자로 쪼개 계기판으로 만든다. 네 칸이 다시 일곱 가지 핵심 요소로 갈라지고, 각각을 주관적으로 매긴다. "숫자 하나는 성취를 가져다줘요. 그건 중요합니다. 깎아내리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일곱 숫자가 다 기능하면, 그 보상은 어떤 포트폴리오도 못 내는 수익률이에요."
성공한 고객 앞에서 그가 하는 말은 꽤 아프다. "당신은 이 게임에서 이겼어요. 끝났어요. 이제 게임을 바꿔야죠." 회사를 팔았거나 필요한 소득을 이미 확보한 사람들이다. 그는 이걸 농구로 설명한다. 발이 아니라 손으로만 슛하는 선수. 몸 전체를 쓰지 않으니 힘이 덜 실린다. 돈이라는 팔로만 부를 좇으면 그렇게 된다.
일곱 축은 대담에서 러드머가 언급한 단서(네 칸 + 가슴 뛰는 일·그릇·관점 넓히기)로 구성했다. 책이 정의한 '7가지 핵심 요소'의 공식 명칭과는 다를 수 있다(대조 필요). 예시 프로필 두 개는 그가 묘사한 경향을 옮긴 것이다.
"완벽해지려고 하지 마. 그냥 기능하면 돼."— 오랜 스승 촉니 린포체가 러드머에게 한 말. 그는 이것을 "오늘 남길 수 있는 가장 큰 메시지"라고 했다
"아주 잘하는 것과 완벽한 것 사이, 그 구간이 제일 위험해요. 다른 형태의 부가 자랄 틈을 안 주거든요." 그의 좌우명도 같은 결이다. 재미없으면, 안 하느니만 못하다.
아름다운 괴물 열세 마리
책이 돈 얘기보다 내면 얘기를 먼저 하는 이유.
우리는 모두 '내가 나를 가로막는' 경험을 안다. 화가 너무 많거나, 욕심이 너무 많거나, 자존심이 너무 세거나. "계속 내 결점을 읊어 주세요, 매트." 그린이 웃었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 갑자기 튀어나와, 나중에 배우자가 "아까 왜 그랬어?" 묻게 만드는 그것. 티베트 스승 촉니 린포체는 그걸 '아름다운 괴물(beautiful monster)'이라 불렀다. 괴물인 건 내가 싫어하는 부분이라서고, 아름다운 건 엄청난 힘을 품고 있어서다.
평생 명상을 해 온 러드머에게 딸들이 말했다. "아빠는 늘 명상이나 상담을 안 하면 자기를 모른다고 하잖아. 명상은 평생 했으니까, 상담도 받아 봐." 받아 봤더니 이틀을 앓아누웠다. 안 보이던 게 보여서다. 예컨대 그는 부정적인 대화엔 절대 끼지 않았다. 누가 괴로운 얘기를 꺼내면 슬쩍 긍정적인 쪽으로 틀었다. 상담사는 그걸 '왼쪽으로 못 가는 것'이라고 불렀다. 농구에선 양쪽 다 돌파했는데, 마음에선 오른쪽으로만 갔던 것이다. 아픈 사람 곁에 그냥 앉아 있는 법을 배우자, 놓치고 있던 삶의 즙이 한꺼번에 돌아왔다.
그가 찾은 괴물은 열세 마리. 그중 하나의 이름은 '이기는 놈(the win guy)'이다. 남자들 모임에서 하나둘 자기 이력을 꺼내기 시작하면 속에서 "내 차례 언제 오지" 하고 근질거리는 그 녀석. "아, 내 아름다운 괴물 왔네." 다루는 길은 여러 갈래다.
흔히 하는 방법
- 해독제를 들이붓는다
- 때려눕힌다
- 억누른다
- "또 이러네, 바보같이" 자책한다
촉니 린포체의 방법
- 연민을 갖고 초대한다
- 옆에 앉아 그냥 지켜본다
- 탐닉하지도, 억누르지도 않는다
- 자리를 내주되, 너무 많이 내주진 않는다
- 이름 붙이기"아, 저기 내가 또 간다." 잘못이 아니다. 누구나 있다.
- 몸에서 찾기머리로 아는 건 첫 단계일 뿐. 괴물이 올라올 때 몸 어디가 반응하는지 느낀다.
- 곁에 머물기밀어내지 말고 그 감각과 함께 있는다. 아래엔 '괜찮음'이 있다.
- 저절로 가라앉음바꾸려 해서가 아니라 함께 있어 줘서, 거꾸로 열린다.
그 괴물이 잦아들자 생긴 변화를 그는 히브리어 '비툴(bittul)'로 설명했다. '여기 없음'. 눈에 띄기 싫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내 앞에서 마음껏 자기 자신일 수 있게 자리를 비워 주는 것. 아버지가 그랬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그냥 방 안에 있는 것만으로 행복한 사람. "한두 마리만 찾아도 배우자가 고마워할 겁니다."
손바닥을 눈에서 떼면
명상하면 '날'이 무뎌질까 봐 겁내는 헤지펀드 매니저에게.
그린이 소개한 어느 성공한 헤지펀드 매니저는 명상이 자기 경쟁력을 무디게 할까 봐 걱정했다. 한편 레이 달리오를 비롯해 그들이 아는 유능한 펀드매니저 여럿이 명상을 꽤 깊게 한다. 러드머는 명상 교사 에이미 에델스타인에게 배운 동작 하나로 답했다. 손바닥을 눈에 바짝 대 보라는 것이다.
손이 눈에 붙어 있으면 바로 앞(골대)밖에 안 보인다. 손은 여전히 거기 있다. 다만 거리가 생기면 손과 함께 코트 전체가 보인다.
포인트가드 출신다운 설명이 이어진다. 골대만 보는 가드는 코트 전체를 못 본다. 누가 다쳤고, 누가 강하고, 누가 움직이고 있는지. "'나는 재무설계사다, 돈을 벌어야 한다' 같은 줄거리에 끌려다니면 나머지 현실을 무시하게 돼요. 그 상태가 그 순간엔 효과적일 수 있어요. 하지만 그렇게 살면 벽에 부딪히고, 사람을 치고 지나가고, 가장 큰 신호를 놓쳐요." 그리고 덧붙였다. "틀린 산을 오르고 있을 수도 있고요."
우리는 모두 덜 익은 과일
연민은 과소평가된 부다. 그리고 연민엔 지도가 필요하다.
그는 회의를 바로 시작하지 않는다. 먼저 '체크인 앤 클리어(check-in & clear)'. "어떻게 지내요? 당신은 로봇이 아니잖아요. 시작하기 전에 털어놓을 거 있어요?" 그는 "개인적인 감정이 아니라 비즈니스일 뿐"이라는 말을 믿지 않는다. 모든 게 개인적이라고. 하루를 점검하는 질문도 셋이다. 참인가, 아름다운가, 좋은가. 네 칸에 대응하는 질문이고, 그중 '좋은가'에 마음을 여는 것만으로 평범한 하루가 달라진다고 했다.
사람마다 서 있는 발달 단계가 다르다는 걸 알면 연민이 쉬워진다. 윌버의 발달 이론에서 그가 실전용으로 쓰는 부분은 이렇다. 핵심은 '초월하되 포함한다(transcend and include)' — 바깥 원은 안쪽 원을 버리는 게 아니라 품는다.
러드머의 거친 구분으로는 지금 미국에서 보수 진영의 상당수가 전통, 무당층의 상당수가 근대, 진보 진영의 상당수가 탈근대 렌즈에 공명한다. 단계 명칭은 윌버 이론 용어를 우리말로 옮긴 것.
그린에게 이 틀은 '판단 완화제'였다. 그는 스스로 남에게도 자기에게도 꽤 가혹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런데 카발라 학자 라브 아실락의 말처럼 "우리는 모두 덜 익은 과일"이라고 보니, 앞만 보고 내달리던 자기 과거도, 지금 눈앞의 불편한 사람도 "그 단계를 지나는 중이구나"로 보이더라는 것이다. 러드머의 아버지는 누가 말썽을 피우면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그 나이 때 걔는 어땠는데?"
러드머는 하나를 더 짚었다. 그가 만나는 사람 중에 아프지 않은 사람은 없다. 최고의 환경에서 사는 사람도 포트폴리오를 끝없이 들여다보며 괴로워한다. 원하는 자리를 못 얻거나, 회의 테이블에서 '여자'로만 취급되며 투명인간이 되거나. "똑똑하게, 짧게, 그리고 사라져라(be brilliant, be brief, and be gone)"가 아니라, 그 고통을 알아보고 옆에 있어 주는 것. "그걸 할 수 있으면 제 하루가 훨씬 값어치 있어져요."
투자하고, 쉬어라
"그래서 제가 웰스 매니저라는 거죠?" — 드디어 돈 이야기.
그린이 마지막으로 재무 이야기를 꺼내자 러드머가 받아쳤다. "아, 제가 웰스 매니저였죠?" 초월하되 배제하면 안 되니까. 수천만~수억 달러를 가진, 어디서든 자문을 받을 수 있는 고객들에게 그가 하는 방식은 의외로 단순하다. 출발점은 친구 마크 헤브너가 만든 말이다. "투자하고, 쉬어라(invest and relax)." 다른 형태의 부를 돌볼 여유가 생기는 재무 구조가 아니면, 그릇이 제 역할을 못 한다는 것.
그의 커리어 대부분은 고객을 '안 되는 것'에서 떼어 놓는 일이었다. 2008년 이후 성과 데이터가 투명해지자 보였다. 시장을 이기는 매니저를 찾을 확률은 낮고, 찾아도 접근하기 어렵고, 접근해도 성과가 이어질지는 운이다. 시장 타이밍은 역사가 증명하듯 어렵고 비싸다. 매년 쏟아지는 내년 전망의 적중률은 "꽤 한심하다". 시장 의견은 칵테일파티에선 흥미롭지만, 한 번 크게 틀리면 그걸 만회하느라 몇 년을 쓴다.
반대로 그가 모건스탠리 초년병 시절 본 것은 기관들의 '바스켓 매매'였다. 종목을 한 바구니로 묶어 사면 개별 종목만큼 수익을 내면서 변동성은 낮았다. 그는 ETF를 일찍 공부했고, 인덱스 운용사 디멘셔널(DFA)을 모건스탠리 플랫폼에 들이려다 내부 반대에 막히기도 했다. 그리고 하나를 더 봤다. 부자 고객이 더 많이 버는 이유는 실력이 아니라 팔 필요가 없어서, 변동성을 견딜 수 있어서였다.
"한두 번 굴리면 뭐가 나올지 몰라요. 하지만 천 번 굴리면 7이 제일 많이 나온다는 건 알죠." 그래서 그는 10년 이상 맡기지 않을 고객은 받지 않았다. "주사위를 충분히 굴릴 시간"이 필요해서다. 막대는 이 페이지에서 실제로 무작위 생성된다.
그린이 짚은 숫자도 있다. 책에 인용된 시카고대 CRSP와 DFA 데이터로는 1926~2025년 미국 대형주 분산 포트폴리오(S&P 500 같은)가 연 10% 남짓, 소형주가 연 12.66%를 냈다. (대형주 수치는 전사상 '10.12%'로 읽히나 불명확 — 대조 필요) 대가는 몇 년에 한 번씩 찾아오는 10%, 20%, 50% 하락이다. 결국 게임은 그 단기 변동을 견디게 만들어서 주사위를 충분히 굴리게 하는 것이다.
"하락은 일시적이고, 상승은 영구적이다."— 러드머가 인용한 자문업계의 스승 닉 머리의 표현
그의 낙관은 기분이 아니라 구조에 대한 믿음이다. 수백만 개 기업마다 아침에 일어나 회사를 더 낫게 만들려는 사람들이 있고, 기업은 자본비용을 넘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한다. 분산 포트폴리오를 가진다는 건 전 세계 수백 개 기업, 제이미 다이먼과 일론 머스크가 내 대신 일하게 하는 것이다. 코로나 때 그의 고객들은 거의 전화하지 않았다. 50% 하락도 각오하자고 미리 이야기해 뒀기 때문이다. AI 앞에서도 그는 낙관한다. "회사마다 수많은 사람이 AI로 회사를 살리려고 애쓸 거니까요."
항아리 세 개
포트폴리오를 겉(자산)이 아니라 속(마음)에 맞춰 짠다.
러드머는 1990년대 역외 캡티브 보험사의 자산을 운용한 적이 있다. 보험사는 부채 만기에 자산을 맞춘다. 1~5년은 운전자본, 5~10년은 보험준비금, 10년 이상은 잉여 포트폴리오. "개인은 왜 이렇게 안 하지? 왜 다들 주식 60·채권 40 한 덩어리로만 굴리지?" 그렇게 나온 게 3포트 포트폴리오다. 차이는 하나, 기준이 숫자가 아니라 심리라는 점이다.
안전기지
놀이터
성장 엔진
항아리의 높이·폭은 개념도다. 러드머는 비중을 숫자로 제시하지 않았다 — 포트 1은 "시장이 50% 빠져도 움찔하지 않을 만큼", 사람마다 다르다고 했다.
포트 1은 안전기지다. 대니얼 골먼의 아내 타라 베넷-골먼이 『감정의 연금술』에서 말한 '안전 기지(secure base)'에서 따왔다. 안전 기지가 있으면 변동성을 견디기가 훨씬 쉽다. 불안이 클수록 이 항아리가 커진다. 정말 초조할 때 열어 보고 "아, 나 괜찮네" 하라고 있는 돈이다.
포트 3은 10년 이상, 전부 주식이다. 주사위를 많이 굴릴 자리다. 그는 10~15년 지평이면 대형 분산 포트폴리오가 두 배가 되는 경우가 "열에 아홉 정도"라고 봤다. 꼭 DFA일 필요도 없다. 그린에 따르면 러드머는 부모님께 사실상 뱅가드 토털 월드 주식 ETF 하나를 사 드렸고, 딸의 은퇴계좌엔 DFA 월드 에쿼티 ETF 하나를 넣었다. 기업 위험·산업 위험·국가 위험을 다 걷어내고 '체계적 위험'만 남기면 된다. 기술주 쏠림이 커진 S&P 500만 고집하는 고객에겐 분산을 조금 더 권하는 정도.
포트 2가 이 구조의 백미다. 5~10년짜리 자리로, 사모펀드든 헤지펀드든 마음에 드는 종목이든 자기 의견을 펼치는 곳이다. 그린의 표현으로는 "놀고 싶은 욕구, 종종 무모하게 어리석은 그 욕구를 울타리 안에 가둬 두는" 장치다. 러드머 자신은 테슬라, 비트코인, 구글을 샀고, 고객들은 경주마, 소송, 격투기 선수에까지 돈을 댔다. 재미있는 건 거의 모든 고객의 포트 2가 해가 갈수록 작아졌다는 사실이다. "자기 의견이 생각만큼 믿을 만하지 않다는 걸 겪으면서요. 겸손해지는 경험이죠." 그래도 없애진 않는다. 포트폴리오에서 재미를 빼고 싶지 않아서다.
불이 켜지는 자리
돈이 배경으로 물러나면, 다음 질문은 '무엇이 나를 깨우는가'다.
회사를 팔고 나면 뭘 해야 할지 몰라 매각을 미루는 경영자를 그는 많이 만난다. 그들이 사실 하는 말은 "나는 이 사업 때문에 불이 켜져 있는데, 팔면 내 목적이 뭐냐"다. 불이 켜지는 데도 구조가 있다. 그가 쓰는 첫 번째 모델은 일본의 이키가이, '살아가는 이유'다.
두 번째 모델은 재무설계사 조지 킨더에게서 빌렸다. 먹고사는 데 필요한 일을 하고 있는가, 그리고 가슴이 정말 원하는 일을 하고 있는가. 대개 두 번째 답은 "아니요"다. 그래서 묻는다. "필요한 돈이 다 있다면, 뭘 하겠어요?" 여기에 그는 세 번째를 얹었다.
해야 하는 일
돈 벌고 의무를 다하는, 삶의 밥과 감자.
이것만 하면 → 마이크처럼 평생 도랑만 판다.
가슴이 원하는 일
필요한 돈이 다 있다면 하고 싶은 것.
이것만 하면 → 너무 진지해져 같이 있기 피곤한 사람이 된다.
재미있는 일
그냥 즐거운 것. 닉스 시즌권, 막내와 오페라.
이것만 하면 → 해야 할 일도, 가슴의 일도 놓친다.
"불이 켜진 사람들을 보면 이 셋이 다 체크돼 있어요." 그린도 실천 중이다. 앞으로 10년간 매년 한 달은 아내와 다른 도시에서 살아 보기로 했고, 첫해는 산타페 도서 축제 기간에 개를 데리고 한 달을 지낸다. "그 한 달도 분명 일할 거고 과로하겠죠." "초월하되 포함하는 거죠." 러드머가 받았다. 그리고 그는 이런 말로 각자의 산을 응원했다. 온갖 조건화가 우리를 경기장까지는 데려다주지만, 자기 자리는 결국 스스로 찾아야 한다고.
바람 인형과 깊은 바다
다 기능하게 만든 다음에 남는 마지막 한 수.
네 칸이 다 기능하면 끝일까. 러드머는 '마지막 요소'가 남는다고 했다. 그릇을 만들고, 재무 부를 쌓고, 내면을 돌보고, 남의 관점을 보게 되고, 세상이 돌아가는 법을 이해했다면 — 이제 그걸 다 내려놓고 가장 깊은 곳을 찾는 일. 음표가 다 갖춰졌으니 힘을 빼고 연주하면 된다.
그린이 기억하는 장면이 있다. 둘이 함께 간 촉니 린포체의 수행 모임에서 한밤중에 화재경보가 계속 울렸다. 사람들이 새벽 2시에도, 3시에도 쏟아져 나왔는데, 사프란색 승복 차림의 린포체는 그때마다 태연했다. 러드머는 이걸 '무조건적 만족'이라고 불렀다. 충만(fulfillment)은 말 그대로 '채워져 있음'이고, 그건 아버지가 그랬듯 안에서 바깥으로 나온다. 그 상태의 사람은 겉에서 보면 이렇다. 마음이 열려 있고, 생각이 열려 있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단단히 발을 딛고 있다.
deAI 메모 — 투자자가 가져갈 세 가지
- 포트 1부터 정한다. 수익률 목표가 아니라 "시장이 반토막 나도 안 팔 수 있는 현금·단기채 규모"가 첫 숫자다. 이게 정해져야 포트 3을 10년 넘게 들고 갈 수 있다.
- 포트 2에 울타리를 친다. 종목 베팅·테마·코인은 금지가 아니라 '놀이터 한도' 안에서. 그리고 해마다 그 놀이터가 실제로 돈을 벌어 줬는지 기록해 본다. 러드머의 고객 대부분은 그 기록을 보고 스스로 줄였다.
- 계기판에서 가장 낮은 바늘 하나만 3으로. 만점이 목표가 아니다. 이번 주 화요일 저녁 약속 하나, 격일 아침 10분이면 충분하다. 투자 공부로 아낀 시간을 거기에 쓴다.
원문 대담은 책 홍보를 겸하고, 진행자 그린은 이 책의 편집자다. 스스로 "전혀 공정한 관찰자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3포트와 장기 분산이라는 처방은 업계에서 새롭지 않다. 새로운 건 순서다. 돈의 구조를 마음에 맞추고, 그 구조로 번 시간을 다른 칸에 쓰라는 것. 숫자 하나에 인생을 걸어 온 투자자일수록 한 번쯤 계기판을 펼쳐 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