칩과 부품과 돈이
흐르는 방향
- 주장: 오늘 읽은 네 편은 사실 같은 이야기다 — AI 인프라 사이클은 아직 초중반이고, 최신 칩은 여전히 모자라며, 그 부족이 부품 가격으로 번지고 있다.
- 검증: 메리츠의 삼전 2Q26 영업이익 90.1조 전망(컨센 ~84조), 화창베이 MLCC 현물가 하루 +4~6%, 마이크론 선급금 220억 달러 — 숫자들이 서로를 지지한다.
- 액션: 1차 체크포인트는 내일(7/7) 삼성전자 잠정실적. 부합하면 신규진입 논리가 살아나고, 반대편 은행 순환매는 "고점 논란의 온도계"로 계속 관찰.
내일 아침, 90조라는 숫자
이야기는 내일 아침에 나올 숫자 하나에서 시작해요. 메리츠증권이 삼성전자 2분기 프리뷰를 냈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영업이익 90.1조원. 시장이 기대하던 84조원 언저리를 한참 웃도는 숫자예요.
비결은 두 가지예요. 하나는 충당금을 이미 두들겨 맞은 상태라는 것 — 충당 전 이익으로는 110조원인데, 여기서 19.3조원을 충당금으로 미리 덜어내고도 90조가 남는다는 계산이에요. "압도적 수익성 재확인"이라는 표현이 과하지 않죠. 다른 하나는 메모리 가격이에요. DRAM 평균판매가격이 +50% 올랐다고 보는데, 컨센서스는 +40%대 중반이었거든요. NAND +63%는 다른 증권사들 예측과 비슷한 수준이고요.
포인트는 원문 메모의 마지막 줄이에요. "내일 잠정실적 발표가 이 수준에 부합하면 신규진입 포인트, 상향 여지 발생 가능." 즉 이 이야기의 결말은 아직 안 나왔고, 내일 아침 공시가 1차 검증대라는 것. 이 리포트 전체를 통틀어 가장 가까운 이벤트예요.
오전에 묻고 오후에 찾으러 가면
가격이 바뀌어 있다
이번엔 무대를 중국 선전의 전자상가 화창베이로 옮겨볼게요. 지난 4일, AI 서버용 고용량 MLCC 현물시장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어요. 무라타의 서버 표준 제품(1206 패키지 476) 2,000개 묶음이 오전엔 650위안이었는데, 오후엔 670~690위안. 하루 만에 +4~6%예요. 일부 품번은 30분마다 호가가 조정되고, GPU 전용 초고용량 제품은 아예 품귀 — 대량 구매엔 10% 이상 웃돈이 붙는다는 얘기까지 나와요.
더 흥미로운 건 번지는 방향이에요. MLCC에서 멈추지 않고 전력반도체·전원관리칩이 10~25%, 중국 로컬 업체 제품 ~15%, 일부 NOR Flash는 25%까지 — 7월 들어 부품 전반으로 인상이 확산되고 있다는 거죠. 상인들은 물량을 쥐고 풀지 않기 시작했고요.
메타가 판다는 것의 진짜 의미
그런데 지난주 시장을 흔든 건 정반대 방향의 뉴스였죠. "메타가 데이터센터 용량을 판다더라 → AI 버블 끝난 거 아니야?" 하나증권 보고서는 이 해석을 정면으로 뒤집어요.
우선 팩트 하나. 메타가 CoreWeave와 구글에서 빌린 GPU는 계약상 재판매·재임대가 대부분 금지예요. 그러니 메타가 팔 수 있는 건 자기 데이터센터의 남는 용량뿐이고, 그마저도 전략은 뻔해요 — 최신 Blackwell·Rubin은 내 모델 학습에 쓰고, 구형 H100·H200을 밖에 판다.
즉 AI 인프라 시장이 훈련(Training)과 추론(Inference)으로 쪼개지고 있다는 거예요. 훈련엔 최신 GPU와 최신 CoWoS가 반드시 필요하지만, 추론은 구형으로도 충분하고 비용이 더 중요하죠. 메타의 매각은 공급과잉 신호가 아니라 "최신은 여전히 부족하고, 구형은 추론시장으로 재활용된다"는 이원화의 증거라는 게 핵심 주장.
보고서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표현은 엔비디아 이야기예요. 매년 신제품을 내는 진짜 이유는 기술 발전이라기보다, Rubin이 토큰당 비용을 10분의 1로 줄여버리면 H100 쓰는 회사는 경제성에서 밀려 업그레이드를 안 할 수가 없게 만드는 것 — 이걸 "고객이 내릴 수 없는 러닝머신"이라고 불러요. 그리고 이 러닝머신이 돌아가는 한 병목의 정점은 여전히 TSMC의 CoWoS 패키징이라는 결론이고요. 수혜 정리도 익숙한 이름들이에요: 엔비디아(교체수요), TSMC(가격 결정력), 하이닉스·삼전(HBM), 그리고 장비주.
스페이스X가 사이클의 수명을 늘린다면
세 번째 노트는 스케일이 커요. 스페이스X IPO — 공모 기준 약 744억 달러, 오버얼롯먼트 포함 857억 달러 조달 — 를 단순한 상장이 아니라 AI Capex 사이클을 연장시키는 자금 공급 이벤트로 읽어요. 빅테크 돈에 민간 자본까지 AI 인프라에 합류한다는 거죠.
공급 쪽 논리는 이래요. AI 반도체는 웨이퍼 → HBM → CoWoS 세 관문을 다 통과해야 하는데 셋 다 병목이고, 장비 발주에서 양산까지 12~24개월이 걸려서 공급이 빨리 못 늘어요. 그리고 이번 사이클이 2018년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 —
2018년엔 현물시장 중심이라 주문 취소가 쉬웠고 그래서 공급과잉으로 무너졌지만, 지금은 선급금까지 낸 수주 기반(Capacity Reservation)이라 과잉 가능성이 낮다는 주장이에요. 종목 아이디어는 램리서치(LRCX, 메모리+파운드리 Capex 동시 수혜), CAMT(HBM 검사장비 점유율 40%+), 온투이노베이션(ONTO, CoWoS·칩렛 검사) 세 개.
그 사이, 돈은 은행으로 피신했다
그런데 같은 주에 정반대 장면이 펼쳐졌어요. 메타발 고점 논란으로 반도체에서 자금이 빠지는 동안, 은행주가 한 주에 +13.8%. 같은 기간 KOSPI가 -3.8%였으니 17.6%p 초과수익 — 순환매의 한가운데에 은행이 섰어요. 금리 수혜에 실적 양호, 주주환원까지 갖췄으니 피신처로는 그럴듯하죠.
디테일도 나쁘지 않아요. 하나금융은 6월 초 멈췄던 자사주 매입을 7월 1일부터 재개했고, KB금융은 매입 규모를 하루 25만 주로 늘렸어요. 은행들이 "자본 여력 충분하다"고 스스로 신호를 보내는 셈. 신한지주의 롯데손보 인수 검토는 관전 포인트인데 — 매각가는 2조원에서 1조원 수준으로 내려왔지만 인수 후 자본 확충까지 치면 결국 2조원 안팎이 들 수 있고, 1조원을 넣으면 CET1이 약 28bp 깎여요. ROE 10% 이상을 최우선 목표로 내건 회사라 비싸게 살 가능성은 낮다는 게 결론이에요. 2분기 실적도 환율 상승폭이 28원에 그쳐 CET1 훼손 우려 없이 무난할 거라는 전망이고요.
이 챕터의 역할은 사실 온도계예요. 은행 순환매가 강해질수록 시장이 AI 고점 논란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뜻이고, 반대로 내일 삼전 실적이 서프라이즈로 나오면 이 자금 흐름이 되돌아갈 수 있다는 것 — 두 챕터가 시소의 양 끝에 앉아 있어요.
네 편의 노트, 한 줄의 결론
이제 실로 꿰어볼게요. 화창베이의 30분짜리 호가(챕터2)는 부품 단에서, 메타의 구형 GPU 판매(챕터3)는 연산 단에서, 마이크론의 선급금 220억 달러(챕터4)는 계약 단에서 — 전부 같은 문장을 말하고 있어요. "AI 인프라는 아직 모자라고, 부족은 가격으로 전이되는 중이다." 그리고 그 문장이 맞는지 확인할 가장 빠른 시험지가 내일 아침 삼성전자 잠정실적(챕터1)이에요. 90조 부근이 찍히면 사이클론이 힘을 얻고, 84조 밑이면 은행으로 간 돈(챕터5)이 옳았던 게 되죠.
덧붙이는 저의 온도: 스페이스X 노트의 필자처럼 저도 이 그림을 통째로 사진 않아요. 다만 부품 현물가가 오르는 동안 사이클이 끝났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는 것, 그리고 검증 이벤트가 바로 내일이라는 것 — 오늘 밤은 그 두 가지만 기억하고 자면 충분해요.